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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놉(NOPE)> 후기와 해석 - 3가지 포인트

치대딩 2022. 8. 23. 15:58

 

 

 

 

영화에 대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으며

주관적인 해석과 객관적인 정보가 함께 쓰여 있습니다.

개인의 의견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화 <놉>의 간단한 줄거리 및 후기

 

 

 먼저 영화는 ‘OJ 헤이우드’(다니엘 칼루야)의 아버지 ‘오티스 헤이우드 시니어’(키쓰 데이빗)가 기이한 현상으로 인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며 시작된다. 해명할 수 없는 의문의 상황으로 인해 아버지가 사망한 충격 소식을 듣고 ‘헤이우드 목장’으로 다시 돌아온 동생 ‘에메랄드 헤이우드’(케케 파머)는 그의 오빠와 달리 주목받길 원하며 고독과 침묵을 견딜 수 없어 하는 모습들을 보인다. 어린 시절 할리우드에서 아역 스타로 유명세를 얻고 지금은 자신이 출연한 작품의 본인 캐릭터 이름을 딴 ‘주피터 파크’를 운영하는 ‘리키 주프 박’(스티븐 연)도 등장한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아무도 볼 수 없는 ‘그것’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는 동시에 각자의 방법으로 그 정체를 쫓아간다.

 

 

 

 


 

 

 영화 <놉>은 조던 필 감독의 이전 영화 <겟아웃>, <어스>와 같이 관객에게 해석을 요구하는 장면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단순히 스릴러적인 요소만을 즐기고자 이 영화를 보려고 한다면 그닥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를 통해 "감독이 왜 이 장면을 여기에 배치하였을까? ", " 이와 같은 사건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 " 하며 깊은 사고를 즐길 수 있는 사람에게는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애초에 이 영화는 12세 관람가로 전작들과 같은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요소는 많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러나 초반에 배치된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의 흥분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또한, 반전이라고 볼 수 있는 요소도 곳곳에 숨어있어 영화를 숨죽이며 보게 될 것이다.

 

 

 

 

 

 

영화를 보고나서 이 글을 참고하며 다시 한 번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를 곱씹어보는 걸 추천한다.




 

 

영화 궁금증 해소하기 1 - '고디의 생일'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미국의 흔한 중산층 가정으로 보이는 집에서 '고디'의 생일파티를 하는 장면인데 이상한게 대사로만 이를 표현한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이 장면을 더 자세히 보여준다. '고디'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은 사실 사람이 아니라 침팬지이다. 가정에서 애완용으로 기르는 것처럼 보이는 고디의 생일 축하를 위해 가족들은 각자 선물을 준비해온다.

 

 '고디의 생일' 장면을 해석하기 전에 간단히 배경 설명을 하자면 백인 부모와 백인 누나 그리고 이후에 등장하는 동양인 '주프'로 이루어진 가족은 사실 실제 가족이 아닌 리얼리티 쇼에 출연하는 출연자들이다. 침팬지 고디를 주인공으로 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엄청난 인기를 끌며 다양한 에피소드를 방영한다. 이에 따라 출연자들의 인기는 솟구치게 되고 주프는 다른 프로그램까지 출연하며 인기를 끌게 된다. 

 

 다시 '고디의 생일' 장면으로 돌아오자.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 선물을 준비해오고 하나씩 선물을 공개한다. 사건은 누나가 선물을 공개하며 벌어진다. 누나는 큰 박스를 가져오는데, 그 안에는 풍선들이 들어있었다. 고디를 깜짝 놀래키기 위해 상자 안에 많은 풍선들을 넣어놓았고, 박스를 열자 그 풍선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 고디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고디가 폭주하는 장면은 실로 잔인하다. 주프를 제외한 출연자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며 고디의 온 몸은 피범벅이 된다. 주프는 두려움에 떨며 탁자 밑에 숨어 있으며 이 장면을 지켜본다. 고디가 계속해서 폭주하는 장면 가운데 장면은 고디 근처에 똑바로 서있는 신발에 포커스를 맞추게 된다. 난장판인 상황 속에서도 그 신발만은 올곧게 서있는다.

 

 고디가 계속해서 폭주하다가 테이블 밑에 숨어있는 주프와 눈이 마주치게 된다. 다른 출연자들과 같이 주프를 잔인하게 폭행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주프에게 다가가 주먹 인사를 건넨다. 주프가 그 주먹 인사를 받아주려는 그 순간 고디는 들이닥친 사람의 총에 의해 총살당한다. 

 


 

 고디의 폭주 장면은 실로 잔인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영화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해지게 만든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인물들이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다루거나 해석하지 않고 오로지 이 장면만을 보여준다. 즉, 우리에게 그 해석을 맡긴다는 의미이다. 

 

 우선 고디가 폭주하게 된 이유부터 생각해보자면, 어떠한 자극에 의해 본성이 폭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극은 누나가 깜짝 선물로 준비한 풍선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오며 소리를 내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해석하게 된 이유는 이후에 나오는 한 장면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

 

 주인공인 OJ가 자신이 키우는 말을 이끌고 할리우드 촬영장에 가는 장면이 있다. 이때 OJ는 촬영장 스태프에게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동물에게 해서는 안되는 금기 사항을 설명하는 장면이다. 금기로 정해놓은 행동을 행하지 않으면 아무 일이 없지만, 이를 행하였을 땐 위험이 닥친다. 즉, 고디에게도 어떤 금기 사항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또 곧바로 일어나는 일인 OJ가 데려온 말에게 거울을 비추며 말이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말은 곧바로 흥분하며 뒷발로 촬영장 바닥을 힘차게 차버린다. 이로 인해 촬영은 모형 말로 대체되었고, OJ는 쫓겨나게 된다. 이 장면을 통해 단지 OJ가 퇴짜 맞는 일을 설명해주기 위함이라기엔 너무 얕은 해석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건을 고디의 폭주와 대조해보면 뭔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어떠한 자극에 의해 동물이 흥분하게 된다는 풀롯이 동일하며
고디는 풍선에 의해, 말은 거울에 의해 흥분하게 되는 것으로 보아
어떤 사물이 그 동물의 금기사항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러한 구성은 이후 '진 재킷'이라 불리는 괴생명체가 등장하면서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진 재킷은 처음에는 UFO와 같은 형체를 하고 있어 단순히 어떤 미확인 비행 물체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실체는 사실 살아있는 생물이었다. 진 재킷도 고디나 말과 같이 금기 사항이 있다. 그것은 바로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다. 

 

 OJ는 진 재킷을 똑바로 쳐다보면 잡아먹혀지고 진 재킷을 보지 않고 있으면 그냥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목숨을 건진다. 즉, 금기사항을 지키면 그 어떤 위험도 닥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성은 처음에 나온 고디의 모습과 완벽히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궁금증 해소하기 2 - 똑바로 서있는 신발

 

 

 여기서 나아가, 똑바로 서있는 신발은 무엇을 의미할까? 애초에 신발은 똑바로 서있기 힘들다. 아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고요한 곳에서도 신발은 똑바로 서있기 힘든데, 그 난장판 속에서 어떻게 신발이 똑바로 서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똑바로 서있는 신발은 비극적인 상황에서 일어난 기이하고 기적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고디가 폭주하며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신발만은 꼿꼿이 서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보이는 기적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독이 이러한 장면을 넣은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을 보여줌으로써 나중에 나올 유사한 상황을 찾아낼 수 있을지 우리에게 힌트를 던져주는 것만 같다. 실제로 이후 장면 중에 OJ가 "나쁜 기적이 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나쁜 기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바로 똑바로 서있는 신발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나쁜 기적은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기적과는 의미가 다르다. 나쁜 기적에 대해 잘 와닿을 수 있도록 설명을 덧붙이자면 전쟁통 속에 피어있는 작은 꽃 한 송이라고 볼 수도 있고, 비극적인 참사 속에서 혼자만 살아 남은 상황도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비극적인 참사에서 혼자 살아 남은 상황은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바로 주프의 상황이다. 다른 출연자가 모두 잔인하게 당하고 있을 때 혼자 살아남은 주프도 어떻게 보면 나쁜 기적을 겪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똑바로 서있는 신발과 주프는 같은 현상에 처해있는 것이다.

 

 이로써 똑바로 서있는 신발이 왜 다른 장면이 아닌 하필 고디의 생일에서 나왔는지, 왜 하필 주프의 시선에서 똑바로 서있는 신발을 강조하였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것이다.

 

 


 

영화 궁금증 해소하기 3 - 제목의 의미

 

 

 그렇다면 과연 제목은 어떤 의미를 함유하고 있을까? 제목인 '놉'은 '나쁜 기적'의 대척점에 있다. 나쁜 기적이 비극적인 상황에 일어난 기적적 현상이라면 '놉'의 의미는 비극적인 상황 그 자체를 뜻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세히 파고들어 보겠다.

 

 인간은 자신이 거스를 수 없는, 아주 비극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절망에 휩싸이며 이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어떤 시도를 하더라도 소용 없을 것만 같은 공포에 사로잡혀 시도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진 재킷' 앞에 놓인 OJ와 에메랄드 및 다른 인물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진 재킷은 UFO처럼 생긴 거대한 생물체로 빠른 속도를 지니며 인간들을 빨아 올려 잡아 먹는 존재이다. 그 크기는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않으며 무심코 그를 쳐다본다면 표적이 되어 결국 잡아 먹히게 된다. 

 

 OJ와 에메랄드가 진 재킷을 목격하고 한바탕 소동에 휩쓸린 뒤 "Nope... Nope..." 하며 이를 부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인간의 기본적인 반사 행동으로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절망을 맛본 뒤 자연스럽게 나올 수 밖에 없는 감탄사이다. 진 재킷 앞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어딘가에 숨어 진 재킷이 물러가길 기다리는 것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공포의 종류 중에 '코스믹 호러 (Cosmic Horror)'라는 장르가 있다. 이는 우주적인 공포의 의미로 대항할 수 없고 절망적인 상황의 공포를 뜻한다. 물론 마지막에 에메랄드가 거대한 풍선을 이용해 진 재킷을 물리치는 장면이 있어 완전히 코스믹 호러 장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 전까지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인 진 재킷에게 느끼는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코스믹 호러를 느끼게 한다고 볼 수 있다. 

 

 코스믹 호러의 특징인 '대항할 수 없다'는 점은 인물들을 절망에 빠트리기에 충분하고 인물들이 이 상황을 부정할 수밖에 없게 된 처지에 공감할 수 있다. 결국 영화 제목 <놉>은 절망에 빠진 상황에 대한 함축적인 표현이자, 포스터에서 인물들이 하나같이 위를 쳐다보고 있는 건 하늘에서 무언가가 나오며 이것이 인물들을 '놉'한 상황에 처하게 만듦을 알 수 있다.

 

 이동진 평론가님의 해설을 덧붙이자면, 진 재킷은 하늘에서 나타나는데 이를 바다로 바꾸어 생각해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영화 <죠스>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OJ가 사는 곳은 외딴 마을로 인적이 드물며 이는 망망대해에 놓여있는 처지와 유사하다. 또한,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진 재킷의 모습은 바다 속에 숨어 있다 언제든 인간을 습격할 수 있는 상어들의 모습과도 유사하다. 영화 <죠스>와 같은 상황은 우리가 많이 접해보고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지만, 하늘에서 무언가가 습격한다는 구성은 우리가 흔히 아는 구성과 닮았으면서도 다른 모습을 보여 신선하게 다가온다.

 


 

 

 전반적으로 신선한 소재, 생각할만한 거리들을 던져주며 충분히 오락성도 갖추어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작들과 비교해보았을 땐 다소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아 존재한다. 진 재킷의 잔인함과 그 앞에 놓인 인물들의 절망적인 모습을 더 부각하면 좋았을 것 같은데 일부로 12세 관람가로 의도한 것으로 보아 감독이 교육적이고 철학적인 의미에 더 신경을 쓴 것 같다. 영화를 보고나서 위 글을 참고하며 다시 한 번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를 곱씹어보는 걸 추천한다.